[특별기고]조성경 명지대학교 교수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8년까지 영구처분 시설이 들어설 부지선정을 추진하는 등 국가차원의 관리 기본계획이 처음으로 마련했다. 정부는 25일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심의·확정했다. 이번에 확정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설치된 공론화위원회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반영한 것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다루는 국가차원의 최초 계획이다. 기본계획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부지선정, 관리시설의 구축, 관리기술 개발과 기본계획 실행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구축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을 비롯해 NGO단체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기본계획의 첫 단계로 진행되는 각 원전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 증설문제는 경주 중?저준위방폐장 유치지원법과의 충돌, 지역주민의 반발 등으로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왔다”고 정부의 준위방사성폐기물 기본계획 확정을 규탄하고 나섰다. 이에 본지는 지난 15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원자력학회 이슈위원회 OPEN 현안회의에 토론자로 참석한 조성경 명지대학교 교수의 발제문을 지면에 담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마련의 의미와 향후 원자력계가 자세를 다지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의 의미와 가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대한민국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한 지 38년 만의 일이다. 정부는 20개월의 공론화과정 이전에도 사용후핵연료 정책포럼을 포함, 수차례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공론화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유발되기도 했으나 갈등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현실적 요구와 소망이 확인되어 통합점과 균형점을 찾아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 발표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공식적인 공론화과정 20개월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검토와 계획 수립 기간 10개월의 결과물이 아니라 32년간의 물리적, 화학적, 과학기술적 변화의 역사성을 담은 사회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정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잡하고 해묵은 숙제에 대해 ‘이젠 진짜 정부가 풀어야 할 때’임을 고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점에 따라 종착점이 달라지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책임 분산의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 미룰 경우 원전을 멈춰야한다는 명제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를 계속 다음 정부로 넘기면서 원전을 정지하는 것을 또 다른 선택지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더 이상 사용후핵연료를 발생하지 못하게 하는 기제는 될 수 있으나 이미 존재하는 사용후핵연료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로드맵에 따라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책임을 이번 기본계획은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이 문제가 특정 지역,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즉‘우리 세대’의 문제라는 것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시민 모두가 이해관계자에 해당하며 이는 시민을 대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세대 모두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정답을 내놓았다기 보다 ‘문제’를 규정한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무엇을 풀어야 할지를, 누가 풀어야할 지를 안다는 것은 해답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이번 기본계획은 해답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계단을 만든 점이라는 데서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의 과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실제로 세상으로 나와 움직이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매듭이 있다.

첫째, 기본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회피하기보다는 소통을 통해 집단지성화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적 갈등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계획을 실천하는 정당한 과정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갈등을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문제점들을 논의의 장에 올려놓고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해결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에 대한 왜곡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불만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사회적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와 관련한 안전규제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현재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운반, 저장, 처분 등과 관련한 기본적인 규제기준은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규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이 부분에 대한 역할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관계시설 여부 논란이 있었던 원전 부지 내의 건식저장시설은 기본계획에 따라 원자력안전법 제20조제10항에 따른 관계시설로 명확하게 규정됐다. 따라서 논란을 마감하고 앞으로 건설될 건식저장시설은 관계시설로서 필요한 절차를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건식저장시설의 확충을 위해 변경허가신청서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월성 원전의 중수로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저장시설은 1990년 4월, 1997년 8월, 2002년 8월, 2006년 6월에 사일로가 허가되었으며, 2010년 2월 맥스터가 허가받은 상태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설립된 것은 2011년 10월이다. 따라서 건식저장시설의 허가는 현재의 절차를 따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스터의 건설이 아니라 확충이라 할지라도 변경허가신청이 아니라 허가신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원자력안전을 바라보는 사회적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변경허가가 아니라 새로운 허가 절차를 거침으로써 기존의 원전 부지 내에 설치될 건식저장시설과 앞으로 설치된 건식저장시설을 실질적, 절차적으로 구분할 뿐 아니라 안전성도 다시 한 번 분석, 평가하여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기술개발의 우선순위와 통합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의 기본은 기술이며, 현재도 관련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말까지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에 투입한 총 비용은 4조 5,060억 200만 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회계와 원자력기금을 재원으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각각 3조6299억과 7600억원, 전력산업기반기금과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을 재원으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각각 8760억과 2600억 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후핵연료 관련 연구개발에 투자된 비용은 8.4%에 불과하다. 이 중 66.5%가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개발에, 운반관련 기술개발에는 6.0%, 저장관련 기술개발에는 3.8%, 처분관련 기술개발에는 23.7%가 투자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기본계획에서도 재활용은 미래창조과학부, 운반, 저장, 처분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구 추이를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와 우선순위에 따른 투자 규모는 정부의 실천의지와 책임의 무게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지표이다.

따라서 원자력 전문가뿐 아니라 재료공학, 지질학, 토목공학, 지반공학 등 공학전문가와 경제학, 사회학, 도시개발, 커뮤니케이션 등을 포함한 사회과학전문가의 실질적인 참여가 꼭 필요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원자력분야의 변방에서 지원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책무를 갖고 기술개발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견고하게 마련하고 통합적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 요구를 수용하여 기술개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효과적으로 적기에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넷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15조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사업자에게 사용후핵연료의 종류, 발생량, 단위발생량당 소요비용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산정된 사용후핵연료부담금을 부과, 징수하고 있다. 경수로는 다발당 3억여 원, 중수로는 다발당 13000만여 원이다.

부담금은 비용산정위원회에서 2년마다 여러 가지 변화된 여건을 고려하여 재산정하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단계별로 세분화하고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언제든 필요할 때 사용 할 수 있도록 부담금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고준위방폐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그러나 법률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세밀한 검토를 거쳐 절차를 진행하는데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법에 의거하여 국무총리실 소속 (가칭)관리시설전략위원회를 구성하고 당장이라도 부지조사 및 부지선정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NIMT(Not In My Term)의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단 위원회를 구성할 때에는 그 역할과 권한, 책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위원 각각을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할 것인지 각각의 이해관계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위원들로 구성하되 위원회 전체의 균형을 갖출 것인지를 우선 결정해야 한다.

여섯째, 현재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는 각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에 대해서도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월성 중수로 원전의 경우 이미 설치되어 운영 중인 건식저장시설도 2019년이면 포화된다.

현재 이와 관련하여 변경허가 시설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지한 바와 같이 이를 변경허가를 통해 손쉽게 처리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허가절차에 따라 향후에 대비해 견고하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고리원전의 경우 신고리원전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이동하여 보관이 가능하다면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시점은 2034년이지만 호기 간 이동이 여의치 않을 경우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시점은 2028년이다. 만약 신고리원전으로의 이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지금부터 신고리 지역과의 정직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한빛원전의 경우도 2024년이면 포화시점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건식저장시설 설치의 가능성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의치 않을 경우 원전의 조기폐쇄도 하나의 방안으로 고려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건식저장시설의 설계수명을 몇 년으로 할지, 중간저장시설의 규모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연계해 고민해야할 것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이슈는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창의적으로 해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고 해도 앞으로 얼마든지 수정, 보완할 수 있다. 오히려 수정, 보완을 통해 사회적 여건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보고서가 그 출발선이었다면 기본계획은 출발을 알리는 휘슬이다. 휘슬이 울려야 움직일 수 있다. 일단 움직여야 어떻게 달리는 것이 효율적인지, 어느 지점이 울퉁불퉁한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빨간 펜을 들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의견을 보태기보다는 이를 국가의 기본계획으로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구체화하여 바르게 실천해나갈 수 있을지 의지를 갖고 의견을 더해야 하는 때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인해 발생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데 그 목적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도 이러한 목표를 실현할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과 이해관계로 인한 굳은살을 걷어내고 쓰라리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하면 기본계획을 보다 더 합리적으로 채워나가면서 실천할 것인가에 몰두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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