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장
어느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갈등이 뒤엉킨 논쟁은 존재한다. 국가, 조직은 물론 개인에게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나 쉽게 해결할 길이 없어 오랫동안 무거운 짐으로 가지고 있는 난제들이 있기 마련이다. 흔히 도저히 풀 수 없는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일컬어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라고 한다.

고르디우스 매듭은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에 등장한다. 지금의 터키지역인 고대왕국 프리기아에는 고르디우스라는 전차에 매달려 있는 매우 복잡한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아시아 원정길에 오른 알렉산더는 이 매듭을 푸는 것 대신 칼로 쳐서 끊어버린 후 동방원정에 성공하여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는 세 대륙에 걸친 정복제왕이 되었다.

이는 기존의 상식과 편견을 깨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난제는 이와 같이 획기적인 결단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지난 7월 원자력진흥위원회를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영원히 격리할 영구저장시설 건설의 첫걸음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심의·확정되었다. 국내 원자력 발전사업의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던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해 정부가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크리스토페 세리(Christophe Xerri) 핵연료주기 국장은 지난 6월 방한하여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은 기술뿐만 아니라 공공의 신뢰가 중요한데 한국은 이 사항을 충분히 고려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는 졸속으로 마련된 법안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면 상반된 의견들이 공존하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저장시설의 매듭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알렉산더가 매듭을 풀려고만 했던 사람들과 달리 칼로 자른다는 역발상을 시도한 것, 그와 같은 획기적인 결단을 할 수 있도록 매듭을 푸는 방법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은 것처럼 창조의 기회가 제공하는 창조적 발상이 필요한 것인가?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라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열쇠가 알렉산더의 잘라 버린 매듭과 같은 과감한 결단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숨에 해결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으려 하거나 한 두 사람의 결단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한 다발의 싸리나무는 꺾을 수 없지만 다발을 풀어헤쳐 한 가지씩 꺾으면 쉽게 부러뜨릴 수 있다는 이솝 우화에서 혜안을 얻을 수 있겠다.

내재된 갈등요소를 모두 풀어놓고 하나씩 해결하려는 자세와 노력만이 사용후핵연료라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내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를 위해 부지확보를 위한 합리적인 노력, 핵심관리 기술과 전문성의 확보, 투명한 정보공개와 소통으로 국민의 신뢰 확보,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소신껏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창조적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는 9월 8일 사용후핵연료와 원전해체기술의 연구성과를 재조명하는 '2016 방사선안전연구심포지엄'이 대전에서 열린다. 필자가 속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주관하는 이번 심포지엄에는 KINS를 비롯해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 원자력 및 방사선 유관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사용후핵연료와 원전해체 관련 최신 연구성과와 규제방향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를 펼칠 예정이다.

'공부는 망치로 한다'는 니체의 말과 같이 갇혀있는 인식을 깨뜨리는 것 그것이 공부이듯, '2016 방사선안전연구심포지엄'이 갇혀있는 인식의 틀을 깨고 이솝의 싸리나무 다발을 풀게 하여 궁극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은 국가적 난제를 풀어내는 창조적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본 기고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KINS Webizne vol.11 september 2016에 게재된 내용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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